모 음료회사 사장님은 직접 나선 광고에서 자사의 신제품이 남성에게 참 좋은데 뭐라 해야할지 몰라 난감해했지만, 존경하는 은사께서는 말로 설명할 수 있어야 비로소 제대로 아는 것이라고 말씀한 적이 있다. 비슷하게 한 비평가는 평론을 쓰는 이유가 사랑하는 대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렇다면 내가 김현진의 <뜨겁게 안녕>에 홀딱 빠지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짧은 시간 나를 행복하게 했던 이 책과 작가에 대한 마땅한 도리일 것이며, 미친 듯이 열광했던 내 자신에 대한 예의리라.
첫째, 문장이 좋다. 수다가 박진감 있게 쏟아진다. 그러니 김훈식의 추상과 비장미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유쾌한 활기로 가득하다. 둘째, 강인한 정신이 있다. 그녀는 상황이 아무리 비관적이어도 포기하지 않는다. (아주) 종종 만취해 악다구니를 부리며 민폐를 끼치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언제나 덤벼라 세상아, 다. 셋째, 건강한 유머가 있다. 현실의 야비함과 생활의 비루함을 견뎌내는 유머(맷집)가 있다. 물론, 작가의 사후적 통찰과 글쓰기에 따른 결과이겠지만, 달관한 자의 여유가 엿보인다. 넷째, 구체적 현실이 있다. 관념적 허세로 가득하고 통속적 유행에 민감한 차도녀의 에세이가 아니다. (이런 점에서, <뜨겁게 안녕> 보다는 가제였던 <서울의 달>이 더 좋았을텐데.) 단칸방을 전전하는 자력갱생의, 도시빈민의 삶이 있다. 평범하지만 비겁하지 않고, 궁핍하지만 비루하지 않으며, 미천하지만 자존감이 있다. 무엇보다 삶에 대한 낙관이 있다. (이성의 비관을 의지의 낙관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외쳤던 그람시가 그녀를 알았다면 참으로 예뻐했을 것이다.) 다섯째, 우리 이야기다.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각박함과 공허함 그리고 변화무쌍함을 체험한 우리만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또래라는 사실만으로도 괜시리 자랑스럽다. 지나가는 어버이연합의 회원이라도 있다면 뒷통수를 때리며 어깨동무하며 “이 빛나는 아가씨를 보세요, 당신들이 비난하는 세대의 위대한 성과에요, 으하하”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다.
우리가 모두 따뜻한 빵이라면 나는 한 개의 도넛, 동글동글 귀여운 찹쌀 도넛이 아니라 뻥, 하고 뚫린 큰 구멍이 있는 그런 도넛의 숙명이다. 그놈의 구멍에는 별별 게 다 들어간다. 유난스러운 외로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관심병과 애정결핍, 지난밤 부끄러운 기억, 꼴에 쓸데 없는 동정심, 독한 술, 추억이라 부르기도 비참한 순간들, 이런 것들이 이 커다란 구멍을 통해 밀물처럼 썰물처럼 오고 또 갔다. 사람은 원래 혼자라는 걸 알면서도 잠깐 그 구멍을 메울 수만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아무나 사랑하고 아무에게나 상처받는다. 만약 당신이 고로케라면 이런 고통 모를 것이다. 얼마든지 몰라도 좋은 고통이다. 금방 튀겨져 따뜻하고 감자나 당근 같은 포근한 속이 들어 있는 당신, 야무지고 빈틈없이 속이 꼭꼭 찬 당신은 구멍 같은 걸 알지 못한다. 하지만 당신도 나름의 고통이 있겠지. 더 채우고 싶어도 괴로울 테니까. 그래서 당신은 더 맛있고 특별한 속재료를 찾는다. 존경스러운 당신의 추진력이, 당신이 정말로 고로케인 건 아니니까 당신이 채우려고 하는 것들은 감자 양파 햄 당근이 아니라 다 좋은 차,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스펙 같은 근사한 속재료. 당신이 아자 아자 파이팅! 할 수 있어! 하고 외치며 도톰하게 속을 채우려고 참 열심히 사는 동안 뭘 넣어도 텅텅 비어버리는 도넛들은 당신이 부럽고 신기하고 가끔은 무서워 멍하니 바라본다. 그러면 당신은 우리를 이렇게 부르지, 루저!
조르주 심농의 <매그레 반장 시리즈>는 <수사반장>의 최불암을 연상시키는 매그레 반장이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범죄(그래서 무려 75편)를 해결하는 수사물이다. 문체는 단순하고 이야기는 신파지만, 인간의 내밀한 심리와 욕망을 세심하고 생생하게 묘사해 잘 만든 단막극 같다.
시리즈의 8편인 <선원의 약속>은 건실하지만 가난한 지식인 청년, 천박하지만 성적매력이 넘치는 꽃뱀, 퇴직을 앞둔 노선장이 고립된 원양어선에서 겪게 되는 삼각관계를 다루고 있다. 내용으로 보면 그렇고 그런 치정극인데, 심농은 여기에 욕망과 질투, 죄의식과 책임 그리고 구원의 문제를 촘촘하게 심어 한 편의 비극을 연출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약혼자가 있는 (하지만 약혼녀에게 특별한 성적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청년이 꽃뱀에게 느낀 강렬한 성욕과 사랑을 구분하지 못해, 갈팡질팡하고 고뇌하는 부분이다.
"맹세코, 반장님은 이해 못 하실 겁니다! 일상의 현실과는 전혀 관계 없는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었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늘 같은 이미지가 떠올라요. 여느 여자들과는 다른 여자의 이미지, 몸으로, 살로 한 남자를 원래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 만들어 놓을 수 있는 여자의 이미지가."
"제겐 단 한가지 욕망밖에 없었어요."
"당연히 그랬겠지!"
"전 몸이 아팠어요. 하지만 오로지 그녀만을 생각했죠. 그녀는 향기로웠어요. 그녀는... 반장님께 말슴드릴 수 없어요! 그게 절 아프게 했어요! 그래요! 아프게 만들 수 있는, 분노로 눈물을 흘릴게 만들 수 있는 욕망! 특히 선장이 방으로 들어가는 걸 봤을 때는! 왜냐하면 상상에 빠졌들었으니까요! 그녀는 절 <큰 아기>라고 불렀어요. 약간 허스키한 그녀 특유의 목소리로! 그리고 전 그 두 마디를 반복하며 저 자신을 고문했죠. 전 더 이상 마리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어요. 대신 페캉에 도착하자마자 그 여자와 함께 달아나는 불가능한 꿈을 꿨죠."
"이해 못하시겠어요? 전 미쳤었어요. 저도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그곳은 다른 세상이었어요. 여기 돌아온 후에야 깨달었어요. 생각해 보세요! 그 검은 선실이 있었고, 다른 사람들이 주변을 맴돌았어요. 다른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죠. 제근 그게 제 삶의 모든 것처럼 보였어요. 그녀가 <내 큰 아기>라고 속삭이는 걸 다시 듣고 싶었어요."
이 부분을 조금더 구체화하고, 한국적인 상황과 과격한 폭력을 추가하면 영화 <황해>가 된다. <황해>의 전반부, 하정우가 남한에 돈벌러간 아내의 외도를 상상하며 안절부절하며 한 숨 쉬는 장면은 위 상황의 영상화라고 해도 믿을 게다.
1. 요새 범죄스릴러처럼 대단한 사건을 기대하고, 매그레 시리즈를 펼치면 실망한다. 이 시리즈는 도스트예프스키가 아주 간명한 문체로 쓴 수사반장이다.
2. 매그레 반장 시리즈는 좋은 출판기획이다. 현재 18권까지 번역되었다. 중단없이 끝까지 번역되기를 기원한다.
<LA 컨피덴셜>을 꿈꾼 <강력3반>. 전개도 속도감이 있고, 캐릭터의 등/퇴장도 분명하며, 결말도 시원하지만, 이야기가 너무 성글다. 가장 큰 문제는 캐릭터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갑자기 멍청해진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심각한 상황에서 긴장감이 다소 떨어진다. 영화 내내 전지전능하던 악당마저 마지막에는 아메바가 된다. 심지어는 영화에서 지성을 전담하던 범죄심리학 박사도 결말에서는 생각 없이 특등사수 놀이를 한다. 그래도 재개발, 대출 등에 기생하는 기득권층이라는 구상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뚝심은 좋다. 수작은 아니지만, 볼만한 형사물이다.
별 기대 없이 손에 잡았는데, 놓지 못하고 끝까지 읽어 버렸다. 이 작품은 (이런 웃기는 분류가 가능하다면) 대중문학의 재미와 순문학의 의미를 동시에 추구한다.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여 게임을 하던 중 차례대로 죽어 나간다는 전형적인 밀실사건인데, 등장인물의 사연에 왕따, 대출 등의 한국적인 상황을 부여해 아주 색다른 이야기를 만들었다. 특히, '운명을 거슬러야 한다'는 게임의 목적은 제한된 공간과 등장인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에 상당한 긴박감을 조성한다. 소설에서 게임의 성패는 참여자의 생존이 아닌 규칙의 이행과 목적의 달성 여부에 달려있다. 한국사회가 거의 공멸에 가까운 제로섬적 경쟁을 강요하며, 개인의 생명이나 존엄과는 무관하게 작동하는 체제라는 점을 의도한 설정으로 보인다. 덕분에 장르소설 답지 않게 읽으면서 사회문제를 떠올리게 되고, 해피엔딩 아닌 해피엔딩에서 묘한 안도감 마저 느껴진다. 소개가 좀 난삽해졌는데, 시간날 때 읽어볼 만한 소설이다.
심심해서 서점에 갔다가 잡지를 한 권 샀다. <ARENA> 2월호, 잡지에 실린 살 수 없는 물건과 허세 가득한 글을 뒤적이고 있자니 괜시리 입맛이 썼다. 성의 없이 책장을 넘기다가 딴나라한나라당 비대위원인 이준석의 인터뷰가 실려 있어,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런데 첫 답변부터 기가 막혔다.
(Q) 젊은 사람이 여기 왜 들어와 있나? 한나라당은 늙은 당이라고 생각한다. (A) 조직 자체가 늙은건 아니다. 당직자들은 젊다. 디지털팀만 해도 IT에 해박하고 유능한 분들로 구성돼 있다. 그리고 여기 박봉이다. 부자정당이란 인식이 강하지만.
당의 사회적 나이를 물었는데, 구성원의 물리적 나이를 답한다. 당의 계급의식을 지적하는 데, 당직자의 박봉을 거론한다.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걸까, 계속 읽어보면 그것도 아니다.
(Q) 우리도 국민이고 성인인데 왜 동등하게 대우하질 않고 어린애 취급을 하는지, 당신과 같은 세대로서 짜증났다. 어떻게 보면 당신이 이곳에서 젊은 세대를 대변해야 한다. (A) 한나라당이 변해야 한다. 이곳에서 들어와서 한나라당 내부에서 비난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야당한테 공격당한 적은 없다. 야당은, 통합진보당 쪽 같은 경우는 이미 20대 중반의 당직자가 많고 활발하게 의견을 내고 있다. 그런 것들이 정례화돼 있어서 그런지 별로 비난을 안한다. 그런데 한나라당 내에서 비판이 많은 것을 보면서 한나라당이 왜 지금까지 20-30대를 대변하지 못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데, 첫번째 처럼 답하는 건 문제의 본질을 구조와 연결하여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의 청년이라면 관계 없겠지만, 이 친구는 한나라당을 근본적으로 쇄신하겠다는 비대위원 중의 한명이다. 한나라당이 이 친구에게 정말 어떤 기대를 했다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이 친구는 주름하나 없이 백치같은 사회의식 아니 좋게 말해 너무 순진하다. 여길 보자.
(Q) 한나라당은 만날 말로만 소통한다. 한나라당의 나이 든 정치인들은 다 욕심쟁이 같이 생겼다. (A) 2003년에 국회에서 한나라당 의원의 인턴을 했었다. 스무살의 눈으로 처음 정치를 본 거다. 깜짝 놀랐다. (Q) 왜? (A) 내가 생각했던 국회의원의 이미지는 '개기름'이었다. 그런데 국회의원 사무실이 있는 건물이 내가 그때까지 본 곳 중 가장 열심히 일하는 건물이었다. (Q) 그래, 우리가 오해하는 부분도 있을 거다. (A) 오해라기보단 국회의원들이 싸우는 것만 부각되고 그런 것만 기억하니까. 나도 인턴 하기 전까진 국회의원들에 대해 비아냥 거렸다. 그런데 일하는 걸 본 뒤부터 감히 그러질 못한다. 결과적으로 한심해 보이는 정책도 과정은 험난했을 것이고, 관련된 사람들이 열심히 일했을 거다.
이건 보통 대학 정치학과 애들이 국감때 의원실에서 인턴을 뛰고 "아, 씨발. 여기도 엄청 빡세구만."하는 수준의 반응이다. 한국사회 어딜가도 돈받고 하는 일은 힘들고 어렵다. 국민적 호구인 공무원도 세계수준에서 비교한다면 최고의 일벌레들이다. 헌데 국회의원처럼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 법을 입안하고 행정부를 견제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자리라면, 누구보다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게 당연하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스파이더맨도 알고 있는 상식 아닌가. 무엇보다 걱정되는 건 이런 생각이다. "결과적으로 한심해 보이는 정책도 과정은 험난했을 것이고, 관련된 사람들이 열심히 일했을 거다." 전두환의 쿠데타나 5.18도 과정은 험난했을 것이며, 관련자들도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차라리 이건 귀엽다.
(Q) 수업은 잘하나? 좋은 선생님인가?
(A) 나는 치사하게 한다. 학생들이 공부 안하려고 집에 가서는 주로 저 선생님 진짜 못 가르쳐라고 핑계를 댄다. 그게 나한테는 안 먹힌다. (Q) 왜? (A) 애들이 그렇게 말하면 학부모들이 바로 반응한다. 야, 하버드 나온 사람이 못가르치면 너는 도대체 누구한테 가르쳐 달라는 거냐.
트랜드에 민감한 청년답게, 절묘한 깔때기 신공. 솔직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 병신 같지만 웬지 멋지다.
그냥 이 친구는 20대 중반의 똑똑하고, 건실한 하지만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은 딱 술자리 안주 수준의 생각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의 보통 청년이다. 그리고 박근혜가 한나라당이 요구하는 것도 딱 그만큼의 이미지일 것이다. 그런데 본인만 모르는 것 같다.
존 스칼지, <마지막 행성> : 존 스칼지 3부작의 마지막. 1편을 읽었다면, 무조건이다.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 어릴 때는 몰랐는데 다시 보니 정치소설이다. <뿌리 깊은 나무>와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탁월한 지도자의 이성적 독재라는 유혹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혹은 악몽 같은 지도자의 전횡을 어떻게 견제해야 하는가. 은영전을 읽으면서 이런 진지한 고민을 하다니, 이것 또한 가카 덕이다.
아무래도 요새 영화 선구안에 문제가 있다. 보는 족족 "올해 최악의 영화를 보았구나"를 중얼거린다. <그린랜턴>의 경우는 생애를 통틀어도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재미가 없다. 이거 언제 재밌어지나 기다리다, 끝이 난다. 삽입도 사정도 없이 지루하게 더듬기만 하는 불충한 에로물 같은 이 따위 영화를 마주한 투자자의 심정은 어땠을까, 절로 숙연해진다. 이 영화의 제작비는 무려 2억불이다. 언제나 열악한 환경에서 남다른 미적감각으로 창작열을 불태웠던 남기남('영구와 땡칠이' 감독) 같은 분에게는 <4대강 정비 사업비>에 버금가는 규모의 제작비이니, 이 따위 만듦새라면 범죄나 다름 없다. 굳이 장점을 찾자면 CG가 굉장히 휘황찬란한데, 녹색이 대부분인지라 눈의 피로가 덜 하다는 점 뿐이다. 아! 생각해보니 '녹생성장' 아이콘으로도 사용할 수 있겠구나.
나는 이런저런 인연으로 대학원에서 북한학을 공부했고, 그 덕분에 밥벌이를 하고 있다(나름 내 전공에 대한 자긍심도 있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탈모를 인증하게될 우려에도 (또한 이를 놀려댈 친구놈들의 오금저리는 악행이 예견됨에도) 불구하고, 북한학과 폐지에 대한 의견을 묻는 인터뷰에 응했다. 쑥스러웠지만 이런 방식으로라도 후배들의 고생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
대학 당국은 경쟁력이라는 정체불명의 단어를 들먹이며, 북한학과를 유사학과와 통폐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논리라면 축구나 족구나 모두 발로 하는 공놀이니, 체력 아깝게 따로하지 말고 하나로 묶어서 해야 할 것이다. 학과의 경쟁력을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학사행정의 근본일 텐데, 그러한 노력도 없이 학과의 있지도 않은 단점을 부각시킨다. 취직 안되는 게 왜 학과 탓인가, 한국사회의 기성세대가 재생산에 실패한 결과이지. 반찬이 입맛에 안맞는다고 밥상을 걷어차버리면, 도대체 무엇을 먹고 살겠다는 것일까. 아울러 서울시내 중위권 대학이 육성하겠다는 '경쟁력'의 본질이 무엇인지 궁금하다.